우리는 늘 미래가 멀리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직업, 어떤 공동체, 어떤 게임은 그 미래를 조금 더 빨리 맞는다. (...) 그것은 어떤 자부심이 무너질 때의 울림, 자신의 세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독자인 우리도 이미 앉아 있다.
추천사,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융합인재학부 교수)
리뷰
- 시작일
- 2025.09.02
- 완료일
- 2025.09.24
- 평점
- ★★★★★
댓글 10
2025.09.09
그런저런 이유로 기꺼이 한번 둬보고 싶었던 이 군과의 대국이 마침 지난 4월 후지쯔배에서 실현됐다. 결과는 내가 졌지만, 그러나 이 군의 바둑됨됨이는 내키지 않았다. 그 내용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군이 풀어야 할 과제가 있는 것 같다.
지금대로라면 뭐랄까, ‘정감(情感)이 없는 바둑’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적다.
바둑은 승부를 내는 동시에 음악이나 회화와 같이 개성을 표현하는 엄연한 예술이다. 예술이라면 우리들이 보고 감동하는 그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차원의 세계가 무르녹아 있어야 되는 것이다. 오직 이기기 위한 승부에 앞서, 자기표현에 충실한 바둑을 항상 생각할 일이다.
이 군은 넘버원이기 때문에 이제 그러한 임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러한 감동을 주는 바둑은 어떻게 하면 둘 수 있게 되는가? 이것은 어려운 경지의 것이기는 하지만 바둑의 공부만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높이는 공부가 바탕을 이루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후지사와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보낸 편지
2025.09.09
긍지와 관련된 문제다.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을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어떤 일의 의미와 인간의 유능함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릴 것이다.
2025.09.09
“바둑 역사를 길게는 5000년으로 보거든요. 그 5000년 동안 바둑의 패러다임은 인간 중심이었는데, 그게 끝난 거죠. 단순히 포석이 변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바둑을 대하는 방식, 바둑의 토양이나 문화 같은 게 송두리째 다 바뀌어 버렸어요. 알파고 이전까지 바둑을 도(道)로 봤던 관점이라든가, 입단 제도라든가, 관전 문화, 프로기사들의 삶, 아마추어 기사들의 삶 등등 바둑의 전 영역에 걸쳐서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2025.09.23
챗GPT가 등장한 뒤로 ‘수준급의 실력을 지닌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당신도 이용할 거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나는 그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은 수준급의 소설 쓰는 인공지능을 쓰는 일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전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 괜찮은 인공지능이 나와서 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하면, 내게 선택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걸 써야만 한다.
2025.09.23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처방전에 자기 이름을 서명하는 존재는 인간 의사일 것이다. 인간 의사는 그 권한을 잃고 싶지 않을 테고, 진단 도우미 개발사는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처방전을 쓸 권한과 그에 대한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의 주권을 믿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언론에서는 아마 AI 진단 도우미와 다른 처방을 내려서 환자를 구한 경험 많은 인간 의사에 대한 뉴스가 주기적으로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기사를 좋아한다.
2025.09.23
그러는 사이 통신 기술은 외로움을 견디는 바로 그 힘과 다른 사람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그 방식 자체를 훼손하고 왜곡한다. 통신 기술은 외로움이라는 개념을 변질시켰다. 외로움은 이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외로움은 이제 탁하고 막연하게 편재(遍在)하는 문제다. 그리고 우리는 그윽하고 감미로운 고독을 잃어버렸다.
2025.09.23
가치가 기술을 이끌지 못하고 기술이 가치를 훼손하는 현상은, 기술이 개념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우리가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중립적이라고 말하며 과학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논의를 피한다. 기술자들은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쓰는 사람이 그 용도를 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들은 틀렸다. 기술은 하나의 사상이다. 흔히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어가면 조리 도구가 되고,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무기가 된다고 말한다. (...)칼 중에서도 일본도 같은 칼로 요리를 할 수는 없다. 과연 쓰는 사람이 기술의 용도를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도의 용도는 일본도를 만든 장인이 거의 정한 것 아닐까? 우리는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헛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물질세계뿐 아니라 정신세계 깊은 곳까지 힘을 미치는 강력한 권력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나 정당, 제도가 그런 권력을 행사하려 들면 반드시 견제 장치가 마련될 것이다.
2025.09.23
도덕적 원근법이라는 개념이 거기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술 개발로 혜택을 볼 사람들은 보통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피해를 입을 사람들은 가까이 있을 테니 말이다.
2025.09.23
마쓰오 교수는 그의 책 『인공지능과 딥러닝』에서 딥러닝을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서 50년간의 혁신”이라고 썼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산업혁명에 비유하면서도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 생길 것이라고 낙관한다. “인공지능은 강력한 도구지만 사용하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입장이다.27
많은 인공지능 전문가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나는 다소 의견이 다르다. 그런데 내 의견을 적기 전에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 생길 것’이라고 말할 때, 일자리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회적 가치와 자긍심의 원천인가, 아니면 내가 계좌로 상당한 돈을 꾸준히 입금받는 어떤 이유를 말하는가?
2025.09.24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재밌었다. 다만 작가의 조지오웰 찬양가나 도덕적 원근감 부분에는 완전히 공감하긴 어려웠다.
가장 공감됐으며 공감할 수 없던 부분은 기술이 우리의 삶의 방식은 완전히 바꾸고 가치를 훼손(변경)한다는거다.
과연 그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가치는 변경된것이 아닌 훼손된것인가? 인간은 모호함에 의존하고 있다. 그 모호함으로 인해 우리는 가치를 잘 모르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기술에 끌려다니지 않고 가치가 기술을 이끌기 위해 가치를 정의해야 한다면, 그 정의는 모호함에 의존하지 않아야 하는것이 아닌가? 모호함이 사라진 정의는 수치화 되기 가장 좋은 상태 아닌가?
도덕적 원근감에 대해서도 나는 고개가 갸우뚱 했다. 너무 쉽게 타자화 한다. 누가 먼 미래의 사람이며 누가 가까운 사람인가. AI신약 개발 에이전트가 활성화되어 난치병 신약 개발에 획기적인 시간 단축이 일어나 난치병 환우에게 기적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신약개발 연구원들의 신입공채가 없어지거나 경력직들이 대거 권고사직을 받게 된다면 누가 가까운 사람이며 누가 먼 사람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