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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히카] 폭설이 언젠가 그칠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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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admin
작성일2016.09.26
조회157

*오르히카오르

*빛의전사는 트레일러의 빛의전사로 상정되었습니다.

*창천의 이슈가르드 3.1까지의 중요스토리 네타를 기반으로 합니다.

*날조된 설정이 있습니다

**

모험가는 걸었다.

한 걸음을 내릴 때마다 푹푹 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까지 눈에 빠졌다. 눈보라가 치는 날씨에 어디에서도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눈 쌓인 언덕에는 오직 그가 향하는 대로 길이 나고 있었다. 어쩌면 눈길을 걷는다기보다는 헤쳐간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람이 맹렬하게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걷고 있었다.

눈 앞을 가리는 거센 눈발은 울다하에서 도망쳐 용머리 전진기지로 향했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그날부터 자신의 방이 된 - 전진기지의 한 방에 앉아 있었다. 그 방을 준비한 사람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온기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지키고, 죽이고, 다시 지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결국 내 손에 남은건 모함과 불명예였다.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거지? 끝이 있기는 한가?

침잠하는 밤이었다.

  • *
  • -똑똑*

문을 두드린 것은 오르슈팡이었다. 그는 양해를 구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엔 이미 그래도 되는 사이였다. 오래도록 둘은 앉아 침묵을 유지했다. 말없이 잔을 매만지는 모험가의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오르슈팡은 먼저 말문을 뗐다.

「 맹우여, 이곳이 몇 년 전에는 푸른 들판이었다는걸 아나? 재해가 일어나기 전 이 근방은 풀 냄새가 가득한 벌판이었어. 매해 봄이 되면 가문에서는 조촐하게 사냥을 하곤 했지. 곧 있을 이슈가르드 귀족들의 모임을 대비해 주인님이 바련한 포르탕가의 작은 행사였어. 만물이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한껏 느끼는 것은 정말이지, 아주.. 좋아!」

오르슈팡은 그 때를 회상하는듯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모험가는 입안이 버석한 기분을 느꼈다. 봄사냥... 재해로 봄을 잃은 이 커르다스에서는 두 번 다시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 재해가 오고 커르다스가 눈내리는 겨울로 변모했지. 하지만 눈이 잦아들면 동물도 새끼를 낳고, 나무들도 조심스럽게 열매를 맺는다. 겨울속에서도 강인하게 살아가는 기운은 내가 그 시절 느끼던 것과 같아.」

오르슈팡은 잠시 말을 멈췄다. 짧은 침묵에 모험가는 고개를 들어 오르슈팡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다정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시련은 눈과 같아. 언젠가 그칠 거야. 우린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봐야 해.」

*

모험가는 계속 걸었다.

눈발은 조금 약해졌지만,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었다. 등 뒤의 발자국에 눈이 쌓이고 바람에 쓸려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모험가는 꽤 오랜 거리를 걸었다. 드문드문 부서진 벽의 흔적이 그가 올바르게 향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이 길가에 나타나던 에이비스들도, 용들도 없었다. 인간과 용의 화합. 전설 속의 이야기와도 같은 일이었다. 그 일을 위한 첫 번째 걸음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에오르제아의 영웅에게 찬사를 보냈다. 모험가의 영웅담엔 그런 결과만이 남아 있었다. 눈보라에 발자국이 지워지듯 거대한 서사에 동료의 이야기는 묻혀있었다. 모험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남아 있었다.

*

얼마나 걸었을까 하는 의문은 그에게 필요 없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에도 눈을 감고서라도 갈 수 있는 길이였다. 눈에 익은 돌탑들이 그를 맞이했다. 돌탑 뒤에는 비석과 상흔처럼 구멍 뚫린 방패가 있었다. 눈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었다. 마치 그 비석이 기리는 이와 같다고, 모험가는 생각했다. 그가 가장 친애하는 벗이며 연인며 그를 지켜준 은인이었으며, 세상을 지키는 이유가 된 이. 오르슈팡. 모험가는 탄식처럼 이름을 불렀다.

모험가는 비석을 등지고 절벽 끝에 앉았다.

그래, 눈은 언젠가 그쳐, 오르슈팡. 영원히 눈 내리는 겨울도 없고 꽃이 지지 않는 봄도 없을 것이다. 눈이 그치면 그를 만나러 가야지. 그때엔 다음번의 폭설을 준비하는 것은 더는 내 몫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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