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은 드물게 당황했다. 두 번 정도 눈을 끔뻑이고 다시 티엔을 돌아봤다가 소개받은 사람을 쳐다봤다.
"반갑습니다. 마틴 챌피씨라고 했나요? 저는 티엔의 지인이에요."
"옛 지인이다."
'섹파라고는 소개 못하겠지.'
선명하게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마음속 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티엔을 바라보며 네? 라고 반문했다. 티엔의 눈은 힘을 주며 말하고 있었다. 옛 지인이다.
마틴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능력이 원망스러웠다.
*
그러니까 마스터 정은 자신보다 5살이나 연상이었고,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연고도 없는 영국까지 건너와 지내는 사람이었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기 그지없다 해도 티엔 정 역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타인의 살결에서 위안을 받고자 할 수 있는 나이었다. 가슴 한 쪽에 얹힌 말을 밀어내듯 마틴은 저 자신을 설득하려 했지만, 원치 않을 때 툭 튀어나와 저를 파고드는 사람들의 상념처럼 세 글자의 접속 부사는 제 마음에 불쑥 솟아 마틴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티엔 정이었다. 그가 봐온 티엔 정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일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 티엔 정이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았다고? 알고 있었으면 괜찮았을까? 한 톨이라도 티엔의 머릿속에서 읽었다면, 비슷한 이미지를 봤다면 조금이라도 엿봤다면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까?
티엔은 상대와 짧은 안부를 나누고 마틴에게 '가지'라며 짧게 말했다. 예정대로 레스토랑에 도착에 메뉴를 고르는 순간까지도 마틴은 내내 언짢았다. 조금이라도 눈치를 봤으면 좋겠는데,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어 보이는 티엔의 얼굴에 조금 분하기까지 했다.
"-해서. 음? 챌피, 집중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앉아있어 봐야 무의미하군."
회전목마처럼 계속 돌아가던 마틴의 생각은 맞은편에 앉은 티엔의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에 깨어졌다. 티엔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네?"
사귀기로 한 뒤로 첫 데이트였다. 서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까지에도 마음 앓이를 많이 했었다. 첫 데이트에 전 파트너를 마주치게 하는 건 너무 배려 없는 일 아닌가. 마틴은 그게 그의 의도가 아닌 일종의 사고라는 것도 알고 이런 생각이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선 어른스럽게 굴어야지. 자신을 다잡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말을 했다.
"딴생각을 해서 미안해요. 그냥 아까 일이 조금 놀라서 말이에요. 티엔 씨가 그런 식의 만남을 했을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 불만이 있다면 똑바로 말하도록."
망했네요. 마틴은 티엔의 속내만은 읽을 수 없지만, 지금만큼은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으로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불쾌함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자신도 더는 아닌 척할 수 없었다. 마틴은 눈을 내리깔고 말을 이었다.
"...질투가 나서 그랬어요."
"질투? 그와의 관계는 너와 연인이 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으며, 이미 정리되었으니 너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상관없다니,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모를 수 있는 거죠? 그런 건 나도 다 알고 있다고요."
저 목석같은 인간! 답답하고 화가나 말을 쏘아 대면서도 눈앞이 뿌예지는 것을 느꼈다. 울고 싶지 않은데 밀려 나오는 눈물에 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이번의 당황은 온전히 티엔 정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