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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티엔] 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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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admin
작성일2020.07.29
조회197

하태의는 2주로 예정돼있던 임무를 3주 만에 마치고 재단으로 귀환했다. 찬 겨울 바람도 수그러들고 재단의 나뭇가지에는 서툰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은 채탐인 임무를 기준으로 하자면 긴 편은 아니었으나, 계절이 바뀌어 버리니 퍽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임무는 완벽히 달성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임무 중 적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고, 추가적인 정보까지도 손에 쥐고 돌아왔다. 체류가 길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확실한 증거를 쥐기 위해 그는 재단과의 정기보고를 임의로 끊었다. 다소 과격한 방법이었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그러나 그는 불만족스럽게 웃었다. 갓 연인이 된 이와 떨어져 있는 기간이 늘어나는 일은 저울 반대편에 어떤 성과를 얹어 놓아도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설사 연인이 만족할 만한 ‘완벽한 결과’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과연 그는 임무의 지연에 감점을 줄 것인지, 완벽한 마무리에 가점을 줄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형식적인 일이긴 하지만, 제가 브루스에게 구두 보고를 할 때에는 늘 브루스의 뒤에서 뒷짐 지고 서 있던 연인이 이번에는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 감점과 가점의 사이에서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였다. 서류를 뒤적이던 브루스가 안경을 내려 놓으며 문득 생각난 듯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티엔이 감기에 걸려 병가를 쓰고 사저에 있네. 집무실로 가도 만날 수 없을 거야.”

긴장했던 어깨가 예상외의 소식에 움찔다. 소식을 알려주어 고맙다는 말만 덧붙이고 티엔의 집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의 긴장은 어디로 갔는지 발걸음이 빠르고 가벼웠다.

그대도 사람이 맞군? 옅은 고양감이 고개를 들었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사내였다. 감기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그 답지 않았지만 만전을 기할 수 없는 상태를 타인에게 내비칠 성미 또한 아니기에 그 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침상에까지 서류를 들고 앉아 일을 하고 있을 테지. 그 모습을 상상하니 옅은 웃음이 나서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연인이 아프다는데 기뻐서야… 그러나 상상은 스스로를 향한 타이름과는 다르게 내달렸고, 종래엔 서류를 빼앗아 들고 환자식으로 실랑이를 하는 유치한 망상까지 이르자 묘한 기대감이 솟았다. 태의는 이젠 숫제 뛰다시피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현관문에서 벨을 누르고 있자니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의 집으로 들어설 때는 대체로 성마른 욕망에 그의 입술을 정신없이 탐할 때거나, 그보다 조금 더 이성적일 때는 문보다 창문을 통했던 탓이다. 그 간의 밤을 헤아리며 문가에 서있어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어깨를 으쓱하고 시험 삼아 문을 잡아 돌리니 문이 쓱 하고 열렸다. 하태의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성품을 대변하듯 최소한의 가구만 배치되어 있는 살풍경한 거실을 눈으로 훑고 침실로 향했다. 밤새 지칠 만큼 지분거려 체력을 소모시켜도 제 뒤척이는 소리에 금세 눈을 뜰만큼 잠귀가 밝았던 그였다. 아픈 몸을 끌고 밖이라도 나간 것인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가정이었지만 왠지 그 조차도 납득이 되었다.

하태의는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기대를 배반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얇은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있는 티엔 정은 색색 거리는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협탁에는 빈 컵과 뜯긴 약봉투가 흩뜨려져 있었다. 떨떠름하게 어깨를 움츠렸다. 상태가 이런데도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미련하게 누워있는 그를 보자 걸음을 보채 던 묘한 기쁨은 온 데 간데 없어졌고 옅은 분노가 피어올랐다.

“티엔, 괜찮으시오?”

열을 재려고 티엔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자는 줄 알았던 티엔이 제 손을 낚아채었다. 손목에 닿는 그의 손이 불에 달군 것만 같았다. 열로 혼탁해진 시선을 가늘게 찌푸리고 저를 한참을 바라보다 상대를 알아보고 안심이라도 한 것처럼 이내 온몸에 힘을 푼다. 그 모습에 치기 어린 희열과 분노가 쓸려나가고 막막한 안타까움만이 자리 잡았다. 침대로 낙하하는 그의 손을 잡아 천천히 내려주고 그의 말라 갈라진 입술을 매만졌다. 입술을 배회하던 손가락이 그의 볼을 지나 턱을 향하자 그가 눈을 감은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천천히 발음되는 그 말을 알아듣자 하태의는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으로 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봄바람은 나를 알지도 못하고 장막 너머로 불어오는데 나를 아는 너는 소식조차 없군. 꿈이라면 족하니 이제 돌아오도록.’


눈을 뜨자 한 밤 중이었다. 달조차 구름에 가려져 방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거의 없다싶이해서, 한참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침에 의사가 왕진을 온 것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희미했다. 연인의 얼굴을 봤던것도 같은데 꿈인듯 했다. 그리움이 수마처럼 잠겨와 고개를 흔들었다.

온종일 잠을 자고 나니 한결 나아진듯 몸이 가뿐했다.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해 기운이 없는 것을 빼고는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온종일 땀을 흘렸을 텐데도 잘 말라 보송한 몸을 제 손으로 한번 쓸어본다. 낮선 인기척이 들려온건 그때였다.

“그대가 이렇게 몸관리를 못하는 사람인줄은 몰랐습니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어둠속에서 인영이 흔들리며 제게 몸을 숙인다. 비꼬는 듯한 말과는 다르게 꼭 아이가 투덜거리는 것 마냥 연인은 제게 말을 걸었다.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마른 목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눈치빠르게 컵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어제 도착했소. 보고싶었소?”

가뭄에 쩍 갈라진 땅에 비라도 내린듯 미지근한 물이 목에 스며들었다. 그제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쓸데 없는 모습을 보였군.”

“나는 보고 싶었습니다”


티엔의 마지막 대사는 이백의 시 춘사(春思)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春思(춘사 : 봄날의 임 생각) / 이백(李白)

燕草如碧絲연초여벽사

秦桑低綠枝진상저녹지

當君懷歸日당군회귀일

是妾斷腸時시첩단장시

春風不相識춘풍부상식

何事入羅幃하사입나위

임 계신 연나라 풀은 푸른 실과 같고

이 곳 진나라 뽕나무는 푸른 가지 드리웠소

그대가 저에게 돌아오고 싶은 생각 하실 때가

곧 당신 그리워 제 창자가 끊어지는 때입니다

저와 봄바람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일로 저의 비단 장막으로 불어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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